

목 차
(1) ‘별이된 아이들’ 메뉴에 대한 간단한 설명
(2) ‘별이된 아이들’ 메뉴를 만들게 된 배경
(3) 글씨체 (캘리그라피) 에 대한 설명
(1) ‘별이된 아이들’ 메뉴에 대한 간단한 설명
이 메뉴는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분들을 추모하고 기억하기 위해 만든 공간입니다.
우선은
하늘로 떠난 250여명의 단원고 아이들을 위해
아이들의 이름을 한명 한명씩 캘리그라피로 적고,
한겨레신문을 통해 유가족 분들이 말씀해주신 아이들의 꿈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한겨레신문에 실린 아이들의 꿈들은 ‘전체 명단’ 메뉴에 정리하였고,
아이들의 이름을 적은 캘리그라피는 ‘개인별 글씨’에 정리되고 있습니다.
(2) ‘별이된 아이들’ 메뉴를 만들게 된 배경
2014년 4월 16일 이후,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마음의 짐이 감당이 되지를 않았습니다..
세월호 관련 뉴스도 듣기 싫고, 그냥 도망가고 싶었습니다
늘 그랬듯이, 시간이 지나면 좀 나아지겠지.. 라고 생각했지만
이번만큼은 그러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팽목항에 가고, 진도체육관에 가고, 안산의 합동분향소와 광화문 등에 가서도
마음은 그져 벗어나고픈 생각이 큰 것 같았습니다.
아이들 사진을 쳐다보거나 이름을 듣는 것도 괴로웠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그러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한겨레 신문에 실린 아이들의 얼굴을 보게 되었습니다.
박재동 화백님이 그려 주신 아이들의 얼굴들, 그리고 가족의 인터뷰들..
환하게 웃는 그림들 덕분에, 조금씩 조금씩 스스로를 다독일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명 한명의 기사를 읽던 중에
양온유라는 여학생의 꿈이 음악치료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강승묵 군의 꿈은 작곡가이고, 이영만 군의 꿈은 국제구호 활동가였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무엇인가 ‘쿵’ 하고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아이들의 꿈들을 살펴보다 보니
어떤 꿈은 이미 이룬 꿈들이 있었기 때문이고,
어떤 꿈은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꿈들이었습니다..
나와 아주 가까운 사람들의 직업이나 꿈까지 포함한다면
인연이 되는 아이들은 훨씬 많았습니다.
그 아이들이 꿈꾸던 삶을
나는, 우리는, 누군가는 이렇게 실제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안타깝고 슬프고 미안했습니다.
어쩌면 몇 년후에 함께 일했을수 있도 있고
함께 식사하고 이야기하는 가까운 인연이 될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내 아이가 힘들 때 큰 힘이 되어주실 선생님일수도 있고
내 가족중 누군가가 당할 억울한 죄를 찬찬히 살펴줄 법조인일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내 가족이 아플 때 성심껏 돌보아줄 간호사도
내 가족이 즐겨보게 될 방송의 작가도
내 가족의 마음을 달래줄 노래를 멋지게 불러줄 가수도
그렇게 고운 아이들중에서 있을수 있습니다.
그렇게, 아이들의 꿈 덕분에
‘000 명의 희생자들’ 이라는 단어가 아닌,
나와 별다른 인연이 없는 먼곳의, 그져 불쌍한 희생자들이 아닌
나와 내 가족의 삶과 직접 연결된 소중한 생명으로 깊이 다가왔습니다.
한명 한명의 얼굴이, 삶이, 조금더 선명하게 보이는것 같았습니다.
큰 덩어리로만 다가오던 슬픔이
조금씩 나누어지고 구체적으로 보여서인지
도망가고 싶던 마음도 그렇게 서서히 줄어들어 갔습니다.
처음부터 모든 희생자들을 다 기억하고 추모하지는 못해도
나의 삶과 관련된 몇명은 깊이 기억하고 추모할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한걸음씩 시작하면 될 것 같았습니다.

한겨레신문에 실린 아이들의 꿈을 모두 정리해보기 시작했습니다.
위에 적은 음악치료사, 작곡가, 국제구호활동가 외에도,
경호원, 사제, 선생님, 비디오 저널리스트, 간호사, 의사, 자동차 디자이너, 방송작가, 메이크업 아티스트, 여군 장교, 우주학자, 시각 디자이너, 박물관 큐레이터, 격투기 선수, 슈퍼스타, 법조인, 가수, 요리사, 한의사, 수화통역사, 바리스타, 동물학자, 조향사, 여성경찰관, 댄서, 환경조경사, 제빵사, 자동차 연구원, 사업가, 배우, 회계사, 광고 디자이너, 인테리어 디자이너, 약사, 애니메이션 만화가, 모델, 웨딩드레스 디자이너, 소설가, 개그맨, 연예인, 스튜어디스, 카메라 감독, 무술 사범, 치기공사, 해양대 진학, 은행원, 건축가, 패션 디자이너, 컴퓨터 프로그래머, 군인, 여군, 과학자, 중국 전문가, 야구선수, 방송작가, 게임 디자이너, 천문학자, 공무원, 경찰, 동물 조련사, 네일 아티스트, 프로듀서, 수의사 등등 너무나 다양했습니다.
그중에는 ‘평범한 가장’ 처럼 소박하지만 훌륭한 꿈을 가진 학생도 있었습니다.
하늘로 떠난 250여명의 아이들중, 4월초 현재 한겨레 신문에 117명의 기사가 실렸으니,
앞으로 그 꿈들은 더 많고 다양하겠지요.
그렇게,
꽃처럼 고운 아이들 하나 하나 마다
꽃처럼 고운 꿈을 간직하고 있음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주게 되면서
작게라도 할수 있는 일들을 찾게 되었습니다.
유가족 분들을 인터뷰한 ‘금요일엔 돌아오렴’ 이라는 책을 읽고
북콘서트에서 유가족 분들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세월호 침몰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프로젝트 부’ 에 참여하고
광화문에서 ‘416 약속지킴이’에 가입했습니다.
참사후 아예 안산으로 이사를 하고 유가족분들을 위해 일하시는
정혜신 박사님이 만든 ‘치유공간 이웃’의 소식도 바라봅니다.
그렇게 유가족분들의 목소리를 조금더 가까이에서 듣게 되고
무력감 속에서 조금씩 일어나는 방법도 배우게 되었습니다.
잊지 않기 위해, 잊혀지지 않게 하기 위해
큰 걸음뿐만 아니라, 작은 걸음도 분명 필요했습니다.
그 걸음을 함께 걸어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어느날 인가부터,
아이들의 이름을 캘리그라피로 써가기 시작했습니다.
종이에 연필로, 화선지에 붓으로, 스마트폰에 펜으로
100여명의 아이들의 이름을 여러 번, 여러가지 글씨체로 적어보았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밤하늘을 수놓은 아름다운 은하수처럼
곱게 빛나는 별처럼 그렇게 써주고 불러주고 싶었습니다.
자유롭게 행복하게 별이 되어 여행하고 있을 아이들을 생각하며
아이들 이름 두글자를, 별이 남긴 여행 자욱처럼 쓰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단원고 아빠가 말씀하신 것을 들었습니다.
“종교의 유무나 종류와 상관없이, 가장 소중한 것중 하나가 기도입니다”
제가, 저희가 그랬듯이
희생된 아이들이 너무 많아 모두를 기억하고 추모하기는 어려울지라도
자신의 삶과 관련이 되는 몇명이라도 함께 기도해주고, 깊이 명복을 빌어준다면 좋겠다는
소망을 담았습니다.
슬픔의 덩어리가 너무 크거나 버거울 때
작은 한걸음씩이라도 함께 하고, 몇명씩이라도 진심으로 함께 추모해주면 좋겠다는
소망을 담았습니다.
그렇게, 어른들이 아이들의 못다 이룬 꿈을 기억해주고
작더라도 오래 오래 유가족들에게 함께 힘을 실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담았습니다.
아직 가야할 길이 먼 것 같습니다.
하지만,
손잡고 함께 걸어간다면 꼭 이루어지리라 믿습니다.
분향소에서 아이들의 얼굴을 다시 바라봅니다.
단원고 앞에서 올려다본 하늘에 꽃비가 내립니다.
2015년 4월 15일.
안산에서.
(3) 글씨체 (캘리그라피) 에 대한 설명
이곳에 올리는 캘리그라피는 아이들 이름 두 글자를 이용한 것이며,
한글의 배치에 변화를 주어, 별들이 여행하는 추상적인 그림의 느낌이 나도록 하였습니다.
반짝이는 별과 은하수의 느낌을 담기 위해 스크래치 보드와 가는 펜촉을 이용하였고,
작은 스탠드 조명과 카메라를 이용해서 여러 각도에서 촬영하여 올리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꿈을 나누며, 함께 기억하고 추모해주실 분이라면
누구라도 자유롭게 다운로드 하실수 있습니다. (오른쪽 마우스로 ‘다른이름으로 저장’)
이 작업은, 하늘로 떠난 250명의 아이들 이름을 모두 올릴때까지 계속될 예정입니다.
개인별로는 5가지 정도의 그림이 포함됩니다.
예를 들어, 국제구호활동가가 꿈이었던 이영만 군의 경우는 아래와 같습니다.
A. 정면
'영만' 이라는 한글 이름 두글자를 이용한 것이며, 정면에서 촬영한 것입니다.

B. 변환 과정
한글 이름이 어떻게 위의 그림처럼 변환되었는지 간단히 적혀 있습니다.

C. 측면
정면이 아닌 옆쪽이나 아래쪽에서 촬영한 것입니다.
별과 은하수의 느낌이 많이 날때까지 스탠드 조명의 위치를 바꾸어 보고,
입체적인 느낌을 위해 아웃포커싱으로 촬영합니다.

D. 양각
고운 색상의 암석으로 양각을 한 느낌을 내기 위해,
정면에서 촬영한 파일을 편집 프로그램으로 보정한 것입니다.

E. 아이들의 꿈 나눔
정면에서 촬영한 그림 아래에, 아이들의 꿈과 함께 작은 소망의 문구를 담아보았습니다.
* 이영만 군의 경우 아래와 같습니다.
단원고 이영만 군의 꿈은 ‘국제구호활동가’ 였습니다.
그 꿈을 이미 이룬 분들과, 다른 모든 분들께도 청하오니, 영만군의 명복을 함께 빌어주세요.
영만군이 못다 이룬 고운 꿈이 있으니, 더 아름다운 세상을 이룰수 있도록 함께 기억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