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원고 앞에서..


4월 15일 수요일.
세월호 참사 1주기를 하루 앞두고 안산에 왔습니다.
합동분향소에는 주차할 자리를 찾기 어려웠고
이전보다 훨씬 많은 분들이 보였습니다.
작년에 처음 이곳에 왔던때가 기억납니다.
입구에 들어서면서 보이는 수백개의 영정사진들..
시야를 온통 채우는 슬픔에 눌려 제대로 분향도 못하고 도망치듯 나왔었습니다.
다행히도, 그동안 아이들의 이름을 계속 써오고
한겨레신문에 실린 인터뷰들을 읽고, 아이들의 꿈을 정리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아이들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주었던 양온유 양.
음악치료사가 꿈이었던 양온유 양의 사진 앞에 섰습니다.
박재동 화백님이 그려주신 얼굴처럼, 사진에서도 고운 눈망울이 빛나고 있습니다.
온유양의 꿈과 사연이 힘이 되어, 더 잊지 않고 더 기억하며 올수 있었습니다.
친구들을 위해 헌신했던 정차웅 군은 오늘따라 더 듬직해 보이고,
개그맨이 꿈이었던 길채원 양은 더 장난기가 가득하게 보입니다.
엄마가 힘들때면 꼭 안아주었던, 간호사를 꿈꾸던 고해인 양도 더 선해보이고
경호원이 꿈이었던 최덕하 군도 더 멋있습니다.
수의사가 꿈이었던 편다인 양,
사제가 꿈이었던 박성호 군,
국제구호활동가가 꿈이었던 이영만 군,
박물관 큐레이터가 꿈이었던 정지아 양,
법조인이 꿈이었던 임경빈 군.
평범한 가장이 꿈이었던 김건우 군,
그렇게
고운 아이들 한명 한명마다
고운 꿈이 있었습니다.
국화꽃을 놓아 두고
단원고 앞으로 왔습니다.
정문 앞 편의점에 들어서니
실내 테이블에서 단원고가 잘 보입니다.
음료수를 사서 앉아있는데
잠시후 여학생들이 우루루 들어옵니다.
까르르 까르르 ~
이거 먹을까? 저거 먹을까?
그거 다 먹으려면 돈이 모잘라 !!
나는 뭐 먹지?
아 나는 결정장애인가봐 !!
까르르 까르르 ~
편의점 안이 떠나갈듯한 대화와 웃음소리에
주변이 환하게 빛납니다.
편의점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그거 가져와~ 내가 사줄께!”
기분좋은 목소리로, 마치 엄마처럼 얘기합니다.
아마도 돈이 모자라서 빼놓은 과자가 하나 있는 모양입니다.
“진짜요? 진짜요? 진짜 사주시려구요?”
“그럼~~ 얘들이 속고만 살았나!”
“대~~~박!! 고맙습니다앙 ~~~~”
고개를 돌려 카운터를 바라보니
그렇게 고운 아이들 한무리와 아주머니가 웃으며 서 있습니다.
그렇게 예쁘게 웃고 떠들고
사랑받고 사랑하고
때론 부딪치고 깨지고 다시 일어나며
설레이고 꿈을 꾸고
삶을 살아가야 할 아이들이었습니다.
얘들이 속고만 살았나..
애들이 속고만 살았나..
그 말이
참 마음 아픕니다.
아이들이
이제 어른들의 말을 믿을수 있을까.
어른들의 세상을 동경할 수 있을까.
지금의 세상을 이렇게 만든 우리 어른들도
상처와 좌절 속에서 멍들고
그 트라우마들을 치유받지 못해서
마음속에 작은 괴물들을 키워왔기 때문이라는
결국은 피해자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렇겠지요.
아무리 말이 안되는 행동을 하는 사람도
그 사람 나름의 이유가 있고
그런 행동을 하게 만든 시간과 배경들이 있겠지요.
그렇다면
지금 아이들이 받은 깊은 상처와
세상과 어른들을 향한 불신들을 그냥 둔다면
우리 아이들이 맞이해야 할
아이들의 아이들이 맞이해야 할 세상은
훨씬 더 무서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수밖에 없을겁니다.
세월호의 상처가 조금이나마 아물게 되는 것은
일이년에 될 일이 아닌 것 같다는 말은
그래서 나온 것 같습니다.
어쩌면 수십년이 걸릴지 모릅니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진실로 지켜주고 존중하는 세상.
아이들이 어른들을 진실로 신뢰하고 존경하는 세상.
스웨덴의 에를란데르 총리의 말처럼, 국가가 국민의 집이 되는 세상.
돌아와서
아이들을 위한 작은 작업에 속도를 더해봅니다.
한겨레신문에 실린 아이들 한명 한명의 꿈을 정리하고
아이들마다 이름을 이용한 캘리그라피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소중한 꿈들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고운 이름들을 함께 불러줄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이제 1년.
단원고를 둘러싼 길목 길목마다 꽃비가 내리는 것을 봅니다.
별이 된 아이들을 위해 두손 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