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度)과 족(足)

일의 더딤에 지칠때면

오래된 책들을 꺼내 읽습니다.

지난달에는 전우익님의 책들을 읽었는데

‘혼자만 잘살면 무슨 재민겨’ 라는 제목입니다.

밑줄그은 곳이 너무 많아서

시간을 내어 한번 정리할까 합니다.

“한가지 일에 익숙해지는데 10년이 걸렸다면 거져인거여! “

투박한 일갈이 정신을 번쩍 들게 합니다.

종로의 교보문고에 신영복님의 작은 전시회가 있었는데

책과 인터넷으로 보다가 표구된 액자를 보니 감회가 남달랐습니다.

그래서 이번달에는 신영복님의 책중에

‘나무야 나무야’ 를 곁에 두고 있습니다.

내용중에 ‘족과 탁’ 에 관한 글이 있습니다.

신발을 사기위해 발의 크기를 종이에 그린 ‘탁’을 만든 사람이

막상 신발을 사러 갈 때 깜빡 탁을 집에 두고 왔습니다.

다시 집으로 먼길을 가서 탁을 들고 오니

이미 장이 파하고 난 뒤여서 신발을 살수 없었습니다.

사연을 들은 사람들이 딱한듯이 말했습니다.

“탁을 가지러 집에 갈 필요가 뭐가 있소? 그냥 발로 신어보면 될거 아니오”

그 사람이 대답합니다.

“아무려면 발이 탁만큼 정확하겠습니까?”

본질이 무엇인지 헛갈리는 것임을,

어리석은 생각임을 쉽게 알수 있습니다.

신영복님이 덧붙입니다.

탁과 족

의상과 사람

화폐와 물건

교실과 공장

종이와 망치

임금과 노동

이론과 실천

이러한 것들이 뒤바뀌어 있는 우리의 사고를

허상을 따라잡으려고 허덕이는 우리의 마음을

반성하게 하는 교훈이라고 얘기합니다.

정신없이 일하다가

더딤에 조급하고 걱정하다가

잠깐 눈을 감고

넓게 펼쳐진 푸른 풀밭에 누운 나를 상상합니다.

큰 나무 그늘 아래서

얼굴을 만지고 지나가는 봄바람을 느낍니다.

살아가는 모든 걸음들이

모이고 모여 나를 이룹니다.

가고 싶은곳으로 가는 것인지

떠밀려 억지로 가는 것인지

이 모든 것들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그리고 누구를 위한 것인지

잠시 뒤를 돌아보게 되는 아침입니다.

* 추신

글씨는 ‘꽃’ 이라고 쓴 것입니다.

쌍기억은 ‘산’을, 모음 ‘오’는 집의 지붕을, 치읓 받침은 ‘사람’을 나타낸 것이니

작은 꽃 하나에도 우주가 담겨 있음을 캘리그라피로 풀어 보았습니다.

크고 세련된 것들을 따라, 허명을 따라 조급히 달려가는 마음을

조용히 바라봅니다.